같은 것을 반복적으로 보다 보면, 처음에 얼마나 충격적이었든 좋았든 간에, 필연적으로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덕후는 같은 것을 무한히 반복해서 보는 종족이다. 하나를 더 깊게, 더 오래 팔수록 그 횟수는 셀 수 없이 무수히 많아진다. 그렇게, 다시 듣거나 보아도 내 안에 저장되어 있는 감각적 기억의 파편으로 인식해버리는 노래나 영상들이 내게는 꽤 많다. 그런데 그중 하나가 어느 날 갑자기 너무나 익숙한 인식의 틀을 깨고 불쑥 튀어나오더니, 몇 주 내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끊임없이 주기적으로 밀려들던 노랫소리를 드디어 조금씩 흘려보내나 싶었는데, 20주년 팬미팅 포스터를 보자마자 잠잠해져가던 노랫소리가 다시 폭발하듯 선명하게 살아나 귓가에 쟁쟁 울리기 시작했다. 결국 굴복하고 글 쓰는 창을 열었다.

오늘도 머릿속에 무한 루프로 재생되고 있는 노래는, 더 정확히 영상은, 이것이다.

https://youtu.be/XAm0PabdFb8

어느 밤에 쇼츠를 넘기다가 이 영상이 불현듯 내 앞에 나타났다. 물론 아주 익숙한 영상이다. 그런데 가사가 있어서일까, 왜인지 그날따라 몰두해서 보게 되었고, 버드맨을 처음 들었을 때와 비슷한 감정이 들었고, 오빠가 부른 모든 Greatest Love of All을 다 찾아 들었다. 영상을 보기 힘든 상황에서는 휘트니 휴스턴의 원곡을 반복재생으로 종일 들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노래를 듣지 않을 때 들리는 노랫소리는 늘 이 영상의 목소리였다. 데뷔도 하기 전, 그 지난한 변성기조차 오기 전, 아무것도 모르고 노래하고 있는, 어린 오빠.

I decided long ago 나는 오래전에 결심했어요 Never to walk in anyone's shadows 누구의 그늘 속에서도 걷지 않겠다고 If I fail, if I succeed 실패하든 성공하든 At least I'll live as I believe 적어도 내가 믿는대로 살아가겠죠 No matter what they take from me 내게서 뭘 빼앗아 가든 They can't take away my dignity 내 존엄성을 빼앗지는 못해요 Because the greatest love of all 가장 위대한 사랑이 Is happening to me 내게 일어나고 있으니까요 I found the greatest love of all 가장 위대한 사랑은 Inside of me 내 안에 있어요

열넷의 오빠는 그 후로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삶의 단계마다 이 노래를 다시 부르게 될 줄 몰랐을 것이다. 가수 준비를 하며 연습을 위해 불렀던 이 노래의 가사가 자신의 삶의 궤적이 될 줄은 더더욱 몰랐을 테고. 꿈에 들떠 열기 어린 미성으로, 고되고 치열했던 싸움의 한중간에서 조금은 절박한 목소리로, 그리고 미소를 머금고 편안한 목소리로 저 노랫말을 부르는 오빠를 이어서 볼 때마다 어김없이 마음이, 슬픔이, 연민이, 아픔이, 안도감이, 행복이, 사랑이 펄펄 끓었다. 그러고 나면 항상 마지막에는 어린 오빠에게로 돌아온다. 저 영상으로.

준수야. 앞으로 힘들고 속상할 일이 많을 거란다. 하지만 2023년의 너는 “그래도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해보라고”, “생각보다 괜찮고, 그래도 행복하고 감사한 삶이라는 생각이 들테니 최선을 다해보라고” 그렇게 말한단다. 그늘에서 용기 있게 걸어 나와 가파른 오르막길을 올라야 했지만, 존엄도 신념도 빼앗기지 않은 채로 여전히 가장 큰 사랑을 주고 받고 있단다. 그 노래가, 네 삶에 대한 예언이란다.

자신의 데뷔 20주년에 ‘준수타임’으로 시작됐던 지니타임의 이름을 ‘코코타임’으로 바꾸어 팬들을 주인공의 자리에 세운 그 마음이 어떤 건지 생각한다. 20년 전 일기장이 되고 싶다고 했을 때의 모습과 비슷한 모습으로, 하지만 온통 지니에 둘러싸인 채 선물처럼 나타난 오빠를 보고 찔끔 울고 말았다. 그러고 보니 요즘 Greatest Love of All과 더불어 많이 듣는 오빠 노래가 있다. 넌 내 최우선이라고, 세상 무엇보다 최고의 스타라고, 누구보다 가장 큰 팬이 돼주겠다는 노래. 널 사랑하기 위해서라면 구름도 별도 따주겠다고 노래하는 오빠의 목소리를 듣다가 문득, 이 노래를 팬들에게 줬던 오빠의 마음과 지금 이 노래를 오빠에게 주고 싶은 내 마음이 시간을 건너 맞닿은 것을 느꼈다.양방향으로 흐르는 이 따뜻하고 다정한 애정이 점점 더 단단해지고 있다는 것도. 오빠의 가장 위대한 사랑은 완성형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다. 믿을 수 없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