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스타 소식이 뜬 날, 몇 시간이 지나도록 실감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무슨 감정을 느껴야 할지 명확히 결정하지 못한 채로 점심을 먹으러 간 식당에서 익숙한 노래가 흘러나왔다. 무슨 노래인지 제목을 기억해내기도 전에 오빠의 오래전 목소리가 음원 위로 겹쳐졌다. 와, 지금 이 순간에 이 노래를 듣게 되다니 운명인가, 이런 실없는 생각을 하는데 귀에 유난히 꽂히는 가사가 있었다.
그 믿음이 없인 버틸 수 없어
그 희망이 없었으면 난 벌써 쓰러졌을 거야 무너졌을꺼야
그 희망 하나로 난 버틴거야
그제야 둑이 무너지며 감정이 와르르 쏟아졌다.
141230 Passing -지나간다 - 김준수 Junsu-XIA Ballad&Musical vol.3-
지금도 오빠는 부정적인 이야기는 하지 않는 편이지만, 아픈 속내는 오로지 노래로만 짐작할 수 있던 때가 있었다. 특별히 곡 소개를 덧붙이지 않아도, 또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더라도 공연장에 앉아 노래하는 모습을 보면 그냥 알 수 있었다. 그런 노래들에 실려 전해지던 뜨겁고 간절하고 고통스럽던 마음, 아주 큰 결심을 했을 때에만 이따금씩 돌아볼 수 있던 그 마음이 떠올랐다. 실감이 났다. 진짜로 다 지나갔구나.
멍하던 생각이 어느 정도 정리되고 나자, 그 끝을 지나온 지는 좀 되었다는 깨달음이 뒤이어 찾아왔다. 언제부턴가 오빠 입에서 ‘행복’이란 말이 나와도 반사적으로 눈물을 쏟지 않게 되었다. 이를 악물고 버티지 않게 되었다. 불확실함에 마음 졸이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된 지는, 정말로 좀 되었다.
그런 건 말로 달래서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다. 끝없이 반복되는 부당한 상황에 분노하고 슬퍼하고 좌절하던 기나긴 세월의 기억은 말 몇 마디로 지울 수 없다. 그러나 결국 나는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이미 흉터가 된 줄 알고 나조차도 방치해두었던 상처를 작년과 올해, 오히려 오빠가 잊지 않고 돌봐주었기 때문이다. 절박한 다짐과 간절한 바람의 노래였던 오르막길과 살다보면과 헬로헬로는 담담한 확인과 약속이 되었다. 고된 오르막길을 함께 걸어달라고, 살다 보면 살아질 거라고, 조금 기다려달라고 차마 말로는 하지 못해서 노래로 겨우 이야기했었는데. 여기가 오르막길 정상이라고, 살다 보니 정말 살아지더라고, 우리 사랑 잘 견뎌왔다고, 그렇게 미소 띤 얼굴로 노래하는 것을 들었을 때 더 이상 우리가 있는 곳이 터널 안이 아니라는 것을 머리가 알기 전에 마음이 먼저 알았다. 특정 시기의 특정 의미로 내게 각인되어 있던 노래들의 변화가 그 어떤 말보다도 ‘끝’을 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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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방송 활동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한 지는 꽤 되었다. 이 덕질의 근간은 언제까지나 공연일 것이었다. 그럼에도 바람을 완전히 놓을 수 없었던 건, 확인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후에 방송에 나오지 않기를 선택한다면 그건 정말로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그저 모든 것이 끝났다는 단 한 번의 확인, 종지부가 필요했을 뿐이다.
하지만 그것조차도 없어도 괜찮다는 생각을 하던 참이었다. 그 문은 과거에 여러 번, 내가 아는 것보다도 훨씬 더 매몰차게 그를 박대했었다. 새로운 울타리 안은 충분히 행복했고, 그저 그가 더는 상처받을 일이 없기만을 바랐다. 하지만 오빠는 멈추지 않았다. 자신을 내쳤던 바로 그 문을 계속해서 두드렸다. 그리고 나는 영영 열리지 않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던 문이 열리는 것을 두 눈으로 보게 되었다. 기적 같았다. 시아준수가 만들어낸 기적. 오빠는 많은 것을 기적이라 말했지만 그 모든 건 늘 오빠가 이루어낸 것이었다. 말하자면 자연 발생한 기적은 하나도 없었다. 꺾이지 않고, 지치지 않고, 웃음과 긍지와 사랑을 잃지 않고 여기까지 걸어왔기에 응당 김준수에게 주어진 것일 뿐.
지금은 옛날보다는 이것저것 말을 많이 해주는 편이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음악을 통해서만 느껴지는 것들이 있다. 유달리 울컥해 보이던 딩고 콘서트의 A New Life. 꽤 여러 번 라이브로 들었지만 처음으로 가사가 훅 들어왔던 메가필드의 우리도 그들처럼. 그 뒤로 이어지던 스물한 번째 계절이 널 기다릴 테니까, 그리고 에펠피. 9년 전 에펠피를 처음 들었을 때는 일종의 자기암시의 노래라고 생각했다. 법적 공방은 끝났으나 계속되는 외압 속에서, 언젠가는 축배를 들고 자유롭게 놀 수 있을 거라고 염원하며 부르는 노래라고. 그로부터 9년이 지나서야 에펠피는 오늘의 노래가 되었다. 진심을 담아 시원하게 “우린 해냈어”를 내지를 수 있었다. 시아준수가 지금까지 버텨주었기 때문이었고, 또 축배를 들고 파티를 벌일 수 있도록 장을 마련해주었기 때문이었다. 메가필드 공연이 끝나고 나오면서 오빠는 다 안다, 정말 다 알고 다 기억한다…라고 되뇌고 또 되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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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칼리버의 ‘언제일까’가 시아준수 삶의 주제곡이라고 생각했었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사랑한 모든 걸 지켜내겠다고 다짐하는 이 노래야말로 시아준수의 삶 그 자체 아니던가. 엑스칼리버 포스터에 있는 문구마저도.
하지만 오빠는 ‘언제일까’ 속의 기나긴 어둠을 통과해 아더의 삶을 지나왔다. 이제 그의 삶의 주제곡은 ‘스물한 번째 계절이 널 기다릴 테니까’로 넘어갔다. 가상의 인물의 입을 빌리지 않고 김준수가 직접 만들어 건네는 이 노래로 계속 되돌아오게 된다. 가사 한 줄 한 줄에 꽉꽉 눌러 담긴 기억과 약속을 듣는다. 노래하는 그의 얼굴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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