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1월 4일 씀
스물일곱의 보컬리스트, 서른둘의 보컬리스트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6년 전과 작년, 그리고 지금의 내가 오빠를 생각하는 마음은 다 다르다. 글을 썼던 각각의 시점의 나는 같은 사람이 아니다. 아마 오빠도 그럴 것이다. 인생에 공부와 시아준수밖에 없던 때가 있었다. 그때 쓰던 플래너의 표지 안쪽에는 아직도, "시아준수 우러러 한점 부끄럼 없게"라는, 지금 보기엔 좀 민망할 정도로 맹목적인 글귀가 붙어있다. 국어시간에 배우던 모든 애틋한 시마다 오빠를 떠올리던 때였다. 여유시간에 그가 노래하는 모습을 보는 게 유일한 낙이었다. 때로는 오로지 공연 영상을 보고 노래를 들을 생각만으로 하루를 버텨내기도 했었다. 이제 내 인생에는 더 많은 것들이 있다. 좋아하는 것이 많아졌고, 해야 할 일도 많아졌다. 시아준수를 생각하는 날보다 생각하지 않는 날이 많아졌다. 핸드폰을 바꾸면서 노래를 옮겨오지 않아 새로이 만나는 사람들은 내 십대와 이십대의 시작을 온통 가득 채웠던 사람이 있는 줄조차 몰랐다. 꽤 오래 전부터 외국 스트리밍 서비스를 이용하게 되면서 오빠 노래는 들을래야 들을 수도 없을 때가 더 많았다. 그러나 그것이 크게 불편함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내가 변했다는 것을 알았다. 쓸쓸했지만 덤덤하기도 해서, 나는 이 오랜 애정이 정말로 완전히 사그러들었나 했다. 그렇게 생각하고 인정하면서도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가장 힘들고 가장 불안하고 불확실한 순간에 찾는 노래가 무엇인지 언제나 알고 있었으므로. 슬플 때, 외로울 때, 신날 때, 설렐 때, 화날 때, 비올 때, 화창할 때, 낮에, 밤에, 봄에, 여름에, 가을에, 겨울에. 모든 순간에 오빠의 노래를 들어왔고, 그래서 어느 순간에든 그의 노래가 불쑥 생각이 나곤 했으므로. 올해 바람에 찬기가 돌기 시작하자마자 낡은 엠피쓰리를 꺼내 너아사를 찾아 들으며 여전히, 그러나 다르게,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올해로 오빠를 좋아한지 꼭 10년이 되었다. 열다섯 중학생은 스물다섯 대학원생이 되었다. 다시는 그때처럼 사랑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가슴이 떨린다. 나를 가장 반짝이게 한 사랑이 어떤 것이었는지 어렴풋이 기억해낸다. 잘 있었는지 묻겠다고 눈물을 죽죽 흘리며 노래했던 그때의 약속을 꼭 지키고 싶어 벌써부터 애가 탄다. 그대를 만나러 간다. 그대가 돌아오기 하루 전, 나는 다시 약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