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장에 앉아 있을 때, 그럴 때가 있다. 꿈을 꾸는 것 같은, 내가 영화 속 한 장면의 일부인 것 같은 기분. 현실 세계로부터 완전히 유리되어 이 조명과 시아준수 목소리만 오롯이 존재하는 세계에 들어온 듯한 느낌. 포근한 음색으로 지금 죽어도 좋다고 노래하는 걸 듣자마자 올해도 무사히 그 공간으로 돌아왔다는 실감이 나서 눈시울이 뜨거워지며 안도의 한숨 같은 걸 나도 모르게 내쉬었다. 아, 여기서 공연 보다가 지금 당장 죽어도 행복할 것 같다, 익숙하지만 한편으로는 너무나 비현실적이어서 평소에는 잊고 사는 그 감각이 지금 죽어도 좋다는 노랫말을 타고 파도처럼 마음속으로 밀려와 찰랑이며 자리 잡는 것을 고스란히 느꼈다. 늘 시아준수가 가져다주는, 시아준수만이 가져다줄 수 있는, 행복의 원형.
시아라는 예명을 언제나 정말 좋아했지만, 무대 위 또렷하게 빛나던 XIA 세 글자가 유난히 계속 눈을 끌었다. 공연 중 꽤 많은 시간을 무대가 아니라 그 글자를 쳐다보고 있었을 정도로. 연출에 따라 깜빡이기도 하고 색깔이 바뀌기도 하는 글자를 보고 있다가 시선을 내리면 언제나처럼 모든 것을 쏟아 노래하고 춤추는 내 가수가 있었다. 처음 이 이름을 내걸고 했던 공연은 불안정한 상황 속에서 해냈던 도전이었는데, 언제 저렇게 단단하고 빛나는 브랜드가 됐는지. 10년 전과 같은 장소에서 같은 공연을 한다는 게 기적 같다는 말을 정말 여러 번 했지만, 당신이 매년 매 공연 매회 하나하나의 무대로 쌓아 올린 것이라는 말을 꼭 해주고 싶었다. 그러니까 기적이 있다면 당신의 공연을 찾는 관객이 있다는 사실이 아니라, 당신이 지치지 않고 노래를 해왔다는 것이다. 관객으로서 공연자인 당신에게 가진 신뢰가 매번 나를 다시 다음 공연으로 이끈다. 내 갈 길을 찾아 헤매느라 뜸해졌을 때에도 공연만큼은, 질과 재미와 무엇보다 행복이 보장되어 있는 공연만큼은 꼬박 챙길 수밖에 없었다. 매년 나를 살게 한 무대를 만들어 선물해주는 그대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팬들에 대한 불안을 없애줄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래서 그가 준비해오는 매 공연이 기적이라는 생각보다 노력의 당연한 결과물이라고 생각할 수 있게 되면 좋겠지만, 아마 그건 어렵겠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언제나처럼 정성껏 준비해 올 다음 공연에서 열심히 박수 치고 환호하고 뛰어노는 것일 테다. 10년 동안 그래왔듯이. 그 공연을 지금부터 손꼽아 기다린다.